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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형민의 와인프릭] 루비콘 뛰어든 카이사르 루비콘 와인 만든 코폴라 용기와 결단, 둘은 닮았다

字号+작성자:블랙스파클뉴스출처:백과2024-03-29 02:18:32我要评论(0)

미국 내파밸리 '루비콘 와인'◆ 매경 포커스 ◆프란체스코 그라나치(Francesco Granacci)의 1494년 작(作) '루비콘강을 건너는 카이사르(Julius Caesar a

[전형민의 와인프릭] 루비콘 뛰어든 카이사르 루비콘 와인 만든 코폴라 용기와 결단, 둘은 닮았다

미국 내파밸리 '루비콘 와인'

◆ 매경 포커스 ◆

프란체스코 그라나치(Francesco Granacci)의 1494년 작(作) '루비콘강을 건너는 카이사르(Julius Caesar and the Crossing of the Rubicon)' .


지구상에서 가장 유명한 강은 무엇일까요? 가장 긴 아마존강부터 찬란한 이집트 문명을 태동시킨 나일강, 눈부신 경제 발전의 상징인 우리나라의 한강과 독일의 라인강까지…. 많은 사람들이 각자의 이유로 크고 길이가 긴 여러 강을 떠올릴 겁니다.

그러나 오늘 소개할 와인 이야기와 관련이 있는 이 강은 고작 50㎞ 남짓으로 한강의 지류인 공릉천(45.7㎞)과 비슷한 수준의 작은 강이지만, 모두가 한 번쯤은 들어봤을 만한 전 세계적인 인지도를 가지고 있습니다. 심지어 고대부터 현재까지 전 세계인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뭔가 중대한 결단을 내리거나 행동으로 옮길 때 '이 강을 건넌다'는 표현을 씁니다. 현대에 와서는 강의 이름이 아예 '돌이킬 수 없는 지점'이라는 뜻의 영어 단어가 되기도 했습니다. 바로 고대 로마의 정치인이었던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고사를 통해 유명해진 '루비콘강'입니다.



"주사위는 던져졌다"

고대 로마는 과거 우리 선조들이 압록강과 두만강을 한반도 영토의 경계로 삼은 것처럼 이탈리아 반도 북부 아드리아해를 향해 흐르는 루비콘강을 본국과 속주인 갈리아 키살피나의 경계로 삼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속주를 다스리기 위해 병권까지 쥐고 있는 속주 총독은 본국으로 돌아올 때, 자신의 군대를 본토의 경계인 루비콘강에 남기고 본인만 건너는 게 원칙이었습니다.

그러나 기원전 49년, 오랜 기간 갈리아 지방을 평정한 카이사르는 자신의 정치적 생명을 뺏기 위해 본국으로 귀환하라는 원로원에 반기를 들고, 8년여간 자신의 갈리아 정벌에 동행하며 베테랑이 된 군대와 함께 루비콘강의 강물 속으로 뛰어듭니다. "가자, 신들이 기다리는 곳으로. 우리를 모욕한 적이 기다리는 곳으로. 주사위는 던져졌다."

배신자 낙인, 그동안 쌓아올린 명성, 수도 로마에 있을 가족 친지들, 실패 시 후폭풍 등이 눈앞에 어른거리는 상황에서 용기 있는 결단을 내린 카이사르의 속마음은 어땠을까요.

오늘의 주인공인 와인은 이때 카이사르가 뛰어들었던 강의 이름을 붙였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와인 루비콘이 만들어지기까지의 과정 또한 루비콘강을 건너던 카이사르의 고뇌와 용기 못지않아, 그 이름이 썩 잘 어울린다는 점입니다.

훌륭한 떼루아… 하지만 이어 닥친 시련들

미국 캘리포니아주(州) 북부 내파밸리(Napa Valley)는 오늘날 와인 애호가들에게 너무 잘 알려진 와인 산지입니다만 원래부터 그랬던 것은 아닙니다. 내파밸리가 와인의 산지로 세계에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1800년대 이후로 비교적 역사가 짧습니다.

그중에서도 북쪽 러더퍼드(Rutherford)의 잉글눅 빈야드(Inglenook Vineyard)는 200여 년 전 캘리포니아의 와인 산업이 태동하던 시기부터 훌륭한 '떼루아'(기후와 토양 특성 등 포도의 특성을 만드는 다양한 자연조건)를 통해 꾸준히 가능성을 보여준 와이너리였습니다. 핀란드인 선장이었던 구스타브 니바움(Gustave Niebaum)이 '프랑스 스타일의 최고 품질 와인을 만들겠다'는 꿈과 함께 1879년께부터 구입·관리해왔습니다.

하지만 니바움은 떼루아의 도움으로 훌륭한 품질의 와인을 생산했음에도 골드러시와 실버러시가 이어지며 시련을 겪습니다. 황금을 찾아 이곳으로 몰려든 노동자와 이민자들 대부분이 섬세하고 복합적이지만 비싼 고품질 와인보다, 양 많고 빨리 취할 수 있는 값싼 저품질 와인을 찾았기 때문입니다.

여기에 1919년 금주법(볼스테드법·National Prohibition Act)이 시행되면서 와이너리엔 재정적 어려움이 더해집니다. 결국 니바움은 여러 상황을 버티지 못하고 와이너리를 매각하게 됩니다. 매각된 후 니바움의 고집으로 꾸역꾸역 고품질을 생산하던 잉글눅은 주변 와이너리들을 따라 저가 와인을 대량 생산하기 시작하고, 이를 굴욕이라 여긴 니바움은 끝내 수면제 과다 복용으로 사망합니다.

코폴라(오른쪽)와 몬다비. 두 사람의 운명적인 만남으로 잉글눅 와인은 다시 꽃을 피우게 된다. 위키피디아


코폴라와 몬다비, 다시 피기 시작한 꽃

니바움 사후에도 잉글눅은 수차례 손바뀜을 겪으며 초창기 명성을 완전히 잃습니다. 이제 더 이상 잉글눅 와인은 고품질 와인을 뜻하지 않게 된 것입니다. 하지만 1975년 당시 거장(巨匠)이라 불리던 한 영화감독이 이 와이너리를 사들이면서 다시 한번 최고 품질을 위한 담금질을 시작합니다. 바로 영화 '대부(The Godfather)'의 감독, 프랜시스 포드 코폴라(Francis Ford Coppola)입니다.

와이너리 구입 초기 코폴라의 원래 목적은 '가족이 즐길 와인'이었다고 합니다. 어린 시절 금주법에 대항해 가정에서 마실 와인을 만들던 할아버지와의 추억을 되살리는 수준의 의미였습니다. 하지만 그가 캘리포니아 와인의 전설이자 와인계의 거장, 로버트 몬다비(Robert Gerald Mondavi)와 만나면서 오래전 니바움의 꿈이 다시 꽃을 피우기 시작합니다.

당시 코폴라는 이미 영화 '대부'의 큰 성공으로 거장의 반열에 오른 상태였습니다. 어느 날 몬다비가 코폴라의 와이너리를 방문하게 되고, 이날 코폴라 부부는 와이너리 지하 셀러에 보관돼 있던 19세기 니바움의 와인을 대접했다고 합니다. 몬다비는 와인을 맛보곤, 그 품질에 감동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프랜시스, 이것 봐요. 이곳에서도 이런 와인을 만드는 일이 가능하답니다." 몬다비는 이어서 코폴라에게 와이너리와 얽힌 니바움의 이야기를 들려줬습니다. 그리고 영화감독인 코폴라는 니바움과 잉글눅 와이너리의 이야기에 매료됩니다.

구스타브 니바움의 초상. 그는 내파밸리 잉글눅 와이너리의 창설자다. 위키피디아


또다시 닥친 시련…그러나 포기할 수 없다

공교롭게도 이날 코폴라 부부가 몬다비에게 대접한 니바움의 와인은 니바움이 그토록 이루고자 노력했던 '프랑스 스타일 고품질 와인'의 근본이 되는 '까베르네 소비뇽 클론 29' 품종으로 빚은 와인이었습니다. 니바움이 직접 유럽에서 공수해 식재했다고 합니다.

아무튼 니바움 이야기에 매료된 코폴라는 과거 잉글눅의 포도밭을 야금야금 사들입니다. 밭을 전문적으로 관리할 책임자도 고용하고요. 영화와 와인의 두 거장이 만나 니바움의 오랜 꿈을 다시 꽃피우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러나 당시 코폴라의 재정 상태는 그가 1976년부터 찍던 영화 '지옥의 묵시록' 때문에 최악을 향해 치닫고 있었습니다. 막대한 사재를 털어넣어 촬영을 이어가는데, 자꾸 문제가 생겨 제작 기간이 길어졌고, 이는 고스란히 재정 부담으로 돌아왔습니다. 애초 1977년 12월 개봉 예정이던 영화는 개봉 시기를 여러 번 미루더니 1979년 8월에야 개봉합니다.

후일담이지만, 당시 영화에 투자했던 유나이티드 아티스트 영화사는 코폴라 감독의 추가적인 투자 요구에 응하는 조건으로 그의 잉글눅 와이너리를 담보로 잡았습니다.



8년의 기다림, 그는 루비콘강을 건넜다

이렇게 극단적인 상황이던 1978년, 코폴라 감독의 와인이 완성됩니다. 몬다비에게 내놓았던 와인과 같은 고급 보르도 와인이 가진 파워풀함을 간직한 와인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도 당시의 와인 소비 트렌드가 문제가 됩니다. 요샛말로 '뽕따'(바로 오픈해서 마시는 편한 스타일의 와인)가 유행하면서입니다.

하지만 여러 전문가들이 코폴라의 와인은 수년은 더 묵혀야 진가가 발휘될 것이라고 조언했고, 코폴라는 재정적 압박에 시달리면서도 와인을 8년간 더 숙성시키기로 결단합니다. 이는 8년간 지속적인 와인 생산을 위한 비용은 지출되지만, 수익이 발생하지 않는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코폴라로서는 2000여 년 전 루비콘강을 건너던 카이사르만큼의 고뇌와 결단이 있어야 가능했을 일입니다. 그래서일까, 그는 와인의 이름을 루비콘이라고 짓습니다. 다행히 영화 '지옥의 묵시록'은 이듬해 개봉하면서 큰 성공을 거둡니다. 이제 코폴라에게 남은 것은 와인의 성공뿐입니다.

미국 캘리포니아 북부 러더퍼드에 있는 잉글눅 와이너리 전경. 잉글눅 와이너리 홈페이지


용기와 결단의 상징, 루비콘

8년이 지난 1985년, 코폴라는 내파밸리 잉글눅 와이너리에서 저명한 와인 저널리스트들을 초대해 시음 적기에 접어든 자신의 와인 루비콘을 다시 한번 선보입니다. 결과는 어땠을까요? 이 자리에 참석한 저명한 와인 평론가 로버트 파커는 이런 감상평을 남깁니다. "맛에 깊이가 느껴지고, 지금이 시음 적기이나 8~10년은 이 상태를 유지할 수 있을 것 같다." 섬세하고 복합적인 고품질 와인의 절정이 10년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은 엄청난 찬사입니다. 코폴라의 결단이 결실을 맺는 순간입니다.

게다가 루비콘은 비단 코폴라 본인만의 성공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당시까지만 하더라도 의문 부호가 따르던 캘리포니아 와인의 장기 숙성 가능성을 공개적으로 확신시킨 계기가 됐기 때문입니다. '루비콘'이라는 단어로 묶인 카이사르와 니바움, 코폴라의 용기 있는 결단이 화려한 꽃을 피운 셈입니다.

인생을 살다 보면, 우리는 종종 물러설 수 없는 전환점에 부딪치곤 합니다. 어떻게든 결정을 내려야 하는 순간에는 큰 용기와 결단이 필요하죠. 그럴 때 루비콘을 한잔 마시며 결의를 다져보는 것은 어떨까요? 어쩌면 카이사르와 니바움, 코폴라의 강한 운이 여러분과 함께할지도 모릅니다.

와인은 시간이 빚어내는 술입니다. 인류와 함께 와인의 역사도 시작됐습니다. 우리가 몰랐던 흥미로운 와인 이야기를 재밌고 맛있게 풀어드립니다.




[전형민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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